[단독] “‘능욕 요청’해도 성범죄 미적용…가해자는 교사가 되겠다 한다”
“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가 모두 공개된 사진을 올려놓고 ‘능욕해주세요’라 하고, ‘협박해서 노예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성적으로 괴롭혀달라는 표현은 없었기 때문에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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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가 모두 공개된 사진을 올려놓고 ‘능욕해주세요’라 하고, ‘협박해서 노예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성적으로 괴롭혀달라는 표현은 없었기 때문에 성범죄가 안 된다네요.”
세계일보가 지난달 30일 만난 서울의 한 고등학교 재학생 A(18)양은 자신을 상대로 텔레그램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이미지·영상 합성) 성범죄를 시도한 가해자를 지난 5월말 직접 잡았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가해자를 특정하면서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지만, 사건의 여파는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다.
학교에서 대체로 말 없이 지내는 편이라는 A양은 누군가와 싸운 적도 없는 자신에게 이렇게 큰 악감정을 가진 이가 있다는 게 너무 무섭고 불안해졌다고 했다. 가해자는 같은 학교 학생이 분명했는데 누구인지 짐작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보자로부터 “지금 본인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에 팔로우 신청한 사람을 확인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가해자가 막 A양의 비공개 SNS에 친구 신청을 했다고 언급했다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 아는 이름이 맞았다. 같은 반 남학생, 그가 속한 무리에서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였기에 의심할 생각도 못했던 B군이 가해자라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빠르게 가해자를 특정한 덕분에 A양은 딥페이크 합성 피해는 입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신분증에 있는 사진 말고 다른 사진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가해자는 A양의 딥페이크 포르노 이미지를 제작하기 전 붙잡혔다. 시간이 조금만 지체됐다면 합성이 이뤄졌을 거라고 A양은 말했다.
A양은 딥페이크 제작과 지인 능욕을 시도한 ‘미수’ 행위에도 경각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정당한 처벌 기준 등이 마련됐으면 해서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 “절도죄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접수됐고 경찰은 절도죄로 검찰에 송치했다”며 “주민등록번호 유출은 주민증을 신분 확인 용도로 사용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사항이라 주민등록법으로는 처벌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능욕해주세요”라는 요청은 있었지만 디지털 합성된 것은 없었기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화는 어려웠으며, 능욕 요청 자체에 대한 처벌 규정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고3인데 이런 일을 겪으니 대학 생활을 꿈꾸기도 힘들어요. 가해자요? 수학교육과 가서 선생님을 하겠대요.”
전과가 남지 않는 소년심판에 회부된 B군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다. 영구적 기록이 남는 퇴학과 달리 강제전학은 4년 뒤면 기록이 사라진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취업 활동을 할 즈음엔 정말 아무 흔적도 남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