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야설) 이럴 수는 없어 - 6부
“태식 선배, 어디에요? 집에 지금 왔는데 선배 있는 줄 알았더니 없네요?”
“어.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너희 집에 못 들르고 지금 일 보는 중이야. 오늘 아무래도 같이 가기로 했던 일은 어렵겠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에이. 모처럼 선배가 바다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열심히 왔는데. 뭐 할 수 없죠. 다음에 봬요.”
“그래, 미안하다. 내가 너 부대 복귀하기 전에 꼭 한 번 시간 내마. 잘 지내고..”
“네. 선배. 그럼 들어가세요.”
태식과의 통화를 끝낸 상민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얼레? 현관에 하이힐이 있다.
-엄마가 벌써 돌아오셨나?-
“엄마~ 엄마?”
상민은 엄마를 불러보았다. 집은 여전히 침묵 속에 잠들어 있었다. 상민은 조심스레 안방 문을 열어봤다. 엄마다. 엄마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많이 피곤하셨나 보다는 생각을 한 상민은 엄마를 굳이 깨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 조용히 자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사이트를 이곳저곳 뒤져보다가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내 자신이 전에 다운받아 놓았던 영화 중에 보고 싶었던 것을 한 편 골라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때 상민의 방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네..”
엄마다. 그런데 얼굴에 나는 지금 무지 피곤하다라고 쓰여 있는 것이 환히 보였다. 엄청 피곤하신가 보다. 그러니 이 시간에 직장에 있지 않고 집에 돌아와 주무시고 계셨던 것이겠지.
“엄마. 내가 들어와서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주무시던데 엄청 피곤하셨나 봐요. 얼른 가서 쉬세요...”
“그래. 엄마가 오늘 좀 다른 때보다 더 피곤하네. 엄마는 가서 좀 쉴 테니 아빠 오시기 전에 좀 깨워주렴.”
“네, 알았어요. 쉬세요. 그럼.”
정란은 조용히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상민은 이내 영화 보기를 멈추고 비밀 폴더를 찾아 들어갔다. 그곳에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소장해온 뜨거운 욕망의 열기가 숨어있는 곳이었다. 혹시나 몰라서 비번을 설정해두고 그것도 모자라 폴더를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종종 컴퓨터를 사용하신다고 해도 컴퓨터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과 글 쓰는 것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 엄마는 절대 알 수가 없는 상민이의 보물창고였다.
10여 분 쯤이 지나고 엄마가 잠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 상민은 만약에 대비해서 다시금 방에서 나와 안방에 귀를 기울여봤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쯤이면 분명 엄마는 깊이 잠드셨으리라. 상민은 다시금 자기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일본산 중에서 자기가 제일 자주 보면서 자기의 분신을 달래주었던 야동을 보기 시작했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집에 아들이 외출하는 동안 옆집에 사는 총각이 와서 엄마를 따먹는 그런 내용의 야동이었는데 어찌나 실감 나게 연기를 잘하는지 상민은 이것을 볼 때마다 손이 바지 속으로 들락거리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늘 상상 속으로는 자기가 아는 옆집 아줌마나 옛날에 다니던 학원 여선생을 떠올리면서 자위를 하곤 했다.
저녁이 되고 아빠가 퇴근하셨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제대로 식사하는 것 같다.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자신은 잠자느라 바빠서 대충대충 넘어갔지만 저녁 시간은 달랐다. 첫 휴가이기에 아빠도 직장에서의 일도 잠시 멈추고 일찍 퇴근하신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빠는 역시나 변함없이 텔레비전 리모콘을 집어 드시더니 이내 스포츠를 시청하신다. 아빠는 스포츠광이다. 전혀 운동은 할 줄 모르는 그런 뚱뚱보 아저씨지만 보는 것만큼은 감독 저리 가라다. 아마 아빠가 감독을 했다면 저 선수들은 선수 생활 그만두고 짐 싸서 음식점이나 차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상민은 아빠의 모습에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상민이도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싶었지만 어쨌든 괜히 아빠 옆에 있다가 화려한 스포츠 중계와 감독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당하기가 싫어서 이내 종종걸음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도 설거지를 마치시고는 피곤하신지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시고 거실에는 아빠 혼자 덩그러니 앉아 또 시작이다.
혼자서도 중계도 열심히, 감독 겸 선수 겸 관중 겸 시청자 겸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하고 계셨다. 상민이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야동을 보지는 못하고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시간을 보니 벌써 2시간이 지났다. 밤 10시가 넘어서고 아빠는 텔레비전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상민이는 여전히 게임에 몰입 중이다. 젠장, 이놈의 뽑기는 죽어도 좋은 장비는 주질 않는다. 어디선가 들어본 바로는 이런 롤플레잉 게임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그런 마력도 있지만 장비를 뽑거나 아이템을 뽑을 때 게임 제작자가 회피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써서 절대적으로 좋은 장비나 아이템이 안 나오도록 하는 그런 기술이 있다고 들었다.
아주 극악의 확률로, 어쩌면 다른 사람은 이렇게 잘 되는데 나는 왜 안될까 싶은 로또 맞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하게 나오는 아이템을 기다리느니 맘 편하게 돈 주고 사라고 유도하는 그런 시스템인지라 상민이도 이 게임을 하면서 종종 현질을 하곤 했었다. 그럼에 불구하고 지금까지 만족할 만한 성과는 없었고 여전히 노가다 뿐이다.
새벽 1시. 아래에서 물 좀 빼고 오라는 신호가 오자 상민은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안방이 있는 쪽 옆에 붙어있어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안방 문 앞을 지나가야 했다. 상민은 조용히 화장실을 가려는데 안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우리 오랜만에 한 번 할까?”
“아이. 왜 그래요. 정말. 저 오늘 엄청 피곤하다고 했잖아요. 오늘은 안 돼요.”
“에이, 그러지 말고 오늘 한번 하고 싶어. 안돼?”
“네, 안 돼요. 오늘은 제 몸이 말을 안 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오늘은 그냥 주무세요.”
“알았어. 그럼.”
이런이런.. 상민이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엿듣고 있으려니 아빠가 엄마랑 한번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보기 좋게 거절당하셨다. 하긴 자기가 알기로도 부모님은 언제부터인가 섹스리스 부부로 살고 계셨다.
아무래도 아빠가 나이가 많다 보니 특히 체력적인 문제도 그렇고 직장 일로 두 분 다 피곤하시기도 하고 이제 그런 것 따질 겨를이 없이 오직 가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때이니 어쩔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잠시 잠깐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남자는 나이 먹어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던데. 어쨌든 상민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아빠의 완패로 끝난 두 분의 거사 실패를 뒤로 하고 화장실에 들러서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나서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잠을 청했다.
어영부영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휴가 복귀 날짜가 하루 남았다. 물론 그동안 학교에 가서 선배들도 만나고 여자 동기들도 만나고 볼 사람은 다 만났지만, 왠지 복귀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서러웠다.
-박 병장님은 3일이나 더 쉬다 복귀할 텐데. 부럽다-
휴가 기간에도 부모님과 특별한 시간을 보낼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냥 식사 같이하고 식구들끼리 외식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아빠는 늘 그렇듯 아침 일찍 출근하시면 저녁 늦게 퇴근하시거나 밤에 들어오시는 게 일상이었고 엄마도 뭐가 그리 바쁘신지 아침에 나가시면 저녁 식사 때가 다 되어서야 들어오셨다. 하기야 영업이라는 게 자신은 해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 상대하는 일이라 엄청 힘들다는 것은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단지 달라진 거라면 상민이가 입대하기 전보다 화장이 좀 더 진해지고 바지 대신 치마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 정도? 아! 그리고 또 있다. 집에 있는 동안 느낀 건데 엄마의 스타킹이 항상 단정하게 검정색 아니면 살색이었는데 며칠 전에 술을 잔뜩 드시고 들어오셨을 때 스타킹이 없었다는 것 정도?
아침에 출근할 때 항상 스타킹을 신고 나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스타킹 없이 맨살로 들어오는 엄마를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딱히 의심할 만한 사항도, 그럴만한 느낌도 없었다. 그냥 불편해서 벗었으려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또 있다. 쓰레기 버리러 갈 때 보통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아빠한테 부탁하든지, 아니면 엄마가 출근하면서 버리고 출근하셨었는데 얼마 전에 다 차지도 않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셨다가 10여 분 있다가 들어오셨던 적이 있었는데 동네 아줌마 만나서 수다 떨다가 늦었다는 엄마 말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저렇게 친해졌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의심의 싹은 말라 죽어 버렸다.
벌써 8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오늘 복귀 날이다. 눈을 뜨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양은 여지없이 떠오르고 다시금 군복 차림으로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점심을 마친 후에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버스 종합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는 수많은 사람이 어디로 놀러 가는 건지, 아니면 일 때문에 가는 것인지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혼자 가도 괜찮다는 자신의 만류를 뿌리치고 엄마도 마중하기 위해 따라 나왔다. 버스표를 끊고 버스를 타기 위해 승차장에 나가서 버스에 막 오르려고 할 때였다.
“얌마, 박 일병~!!”
어라? 박 병장님이었다. 왜 여기까지???
“복귀하면 복귀한다고 말이나 하고 갈 것이지, 말도 없이 그냥 가냐 임마. 자, 이거 가지고 가라.”
생각지도 못한 박 병장의 등장에 나도 놀랐지만, 엄마의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박 병장은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내 손에 쥐여준 것은 복귀할 때 사서 들어가야 할 물품목록과 돈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첫 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복귀할 때 먹을 것들과 사제담배를 사서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다.
상민이는 자신을 이렇게 챙겨주는 박 병장이 고마웠다. 만약 박 병장이 아니었으면 복귀하고 나서 고참들에게 고작 일병이 휴가 한 번 다녀왔다고 군기가 다 빠졌다고 엄청난 갈굼을 당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보호(?)해주는 박 병장이 아직 복귀를 안 한 상태이니 평소에 자신을 눈꼴시게 봐왔던 고참들이 자신을 어떻게 갈굴지 안 봐도 뻔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 병장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박 병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은혜. 가서 갈굼 당하지 말라고 챙겨주는 거야 임마. 나 아니면 누가 널 챙겨주냐?”
이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는 여전히 안절부절, 얼굴은 울상인지 찌푸린 것인지 뭔가 불만이 있는 것도 같고 뭔가 짜증도 가득한 것 같고, 어쨌든 표정이 안 좋았다. 하지만 아들을 다시 부대로 돌려보내는 게 서운해서 그런 것이리라 생각한 상민은 엄마를 한 번 안아주고서는 복귀 잘하고 군 생활 잘하고 포상 휴가 받아서 얼른 휴가 또 나올 테니 걱정 말라면서 엄마를 위로해준다.
상민이가 버스에 오르고 시간이 되어 버스가 서서히 후진하면서 터미널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때까지 터미널 승차장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와 박 병장. 버스가 후진을 다 하고 나서 이제 출발하려고 할 때 상민의 눈에는 물음표가 가득한 의심이 들었다. 박 병장이 먼저 돌아서서 승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엄마를 쫓아가 팔목을 붙잡더니 이내 허리에 손을 감는 장면이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버스는 그런 상민을 태운 채로 유유히 출발했다.
상민은 자신이 아주 잠깐 사이 본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박 병장이 엄마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일 텐데…. 더구나 악수도 아닌,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연인도 아닌데? 그렇다고 그런 행동을 할 만큼 친한 것도 아닌데? 이건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