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8장. 미행 2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불을 끄고 돌아앉아 미적거리며 옷을 벗어 던진 여자가 침대 위로 올라 왔다.
여자는 서두르지 않고 그의 옷을 벗겼다.
그는 여자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자였다.
그것도 다리를 쩍 벌리고 껌을 질겅질겅 씹는 여자가 아니었다.
나긋나긋한 손과 매끄러운 피부를 갖고 있는 여자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여자가 젖꼭지로 그의 가슴을 간지렀다.
"어때요?"
그는 대답대신 여자를 껴안았다.
여자가 그의 가슴에 쓰러지듯 안기며 키들거리고 웃어댔다.
어느 방에선가 벽을 차는 듯한 소리와 여자의 숨이 넘어가는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그들의 흥분을 고조시켰다.
그는 여자의 육체를 끝없이 탐험했다.
짐슴처럼 헐떡이고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여자의 몸 속을 헤엄쳤다.
한 시간 후 그는 천정을 향해 누워 담배 연기를 기분 좋게 내뿜었다.
"괜찮았어요?"
여자가 옆에 누워서 말했다.
"응."
"늙은 여자라 썩 좋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 처지로는 감지덕지야."
그는 느리게 잠이 쏟아져 왔다.
여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하고 자고 나면 늘 집에 집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
"집을 나온지 벌써 한10년 되었거든요.
그런데 모르는 남자와 살을 섞고... 모르는 남자의 가슴에 안겨서 잠이 들때면 마치 남편 옆에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남편을 사랑하는 모양이지?"
"사랑해요..? 글쎄요. 그런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잇을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가정이란 울타리는 소중한 것 같아요.
제가 그리워하는 것도 따뜻한 가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딘지 쓸쓸하기 짝이 여자의 말이었다.
이내 날이 밝았다.
그는 여자에게서 떨어져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간밤에 울기라도 햇는지 여자의 오른쪽 눈두덩이 부어 있었다.
"가세요?"
복도로 나오자 '내실'이라는 명패가 걸린 방에서 주인 여자가 부스스한 얼굴을 내밀었다.
"207호 손님들 나갔습니까?"
"아네요."
"아직 자고 있습니다?"
"해장국 먹으러 갔어요. 다시 온댔어요."
"그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관을 나왔다.
강철구가 여자를 단단히 물은 모양이다.
(어떻게 한다?)
그는 골목 모퉁에서 걸음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아침 기온이 제법 차가웠다.
그는 담배 연기를 가슴 속 깊이 빨아들렸다가 내뿜었다.
그는 코트 깃을 바짝 세웠다.
해가 뜨기 직전의 차가운 냉기에 몸이 떨렸다.
그는 그 근처 상가를 둘러보았다.
모퉁이 건너편에 음식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는 그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해장국 한 그릇을 먹고 다시 골목으로 나오자 강철구가 여관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해는 그때서야 빌딩 사이로 뜨고 있었다.
강철구가 그의 옆을 지나갔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있다가 강철구가 멀찌감치 걸어가자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강철구는 호텔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광장에 세워 둔 승용차를 끌어 냈다.
빨간색의 스포츠카였다.
그는 소형 스포츠카가 그의 옆을 지나갈 때 재빨리 차량번호를 외워 수첩에 적었다.
차는 논현동 골목 쪽으로 꺾어들고 있었다.
(여자를 태울 모양이군)
그것은 강철구가 여자에게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빈택시 한 대를 잡았다.
강철구의 차를 추격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예상대로 강철구는 여관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따라 갈까요?"
강철구가 여자를 스포츠카에 태우고 시동을 걸자 택시 운전기사가 물었다.
"예."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철구의 차는 빠르게 논현동 4거리를 빠져나가 한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철구는 힐끗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새침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초초하고 불안하게 보였다.
그는 핸들을 잡지 않은 오른손을 여자의 허벅지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그러자 여자가 그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의외로 야멸찬 행동이었다.
그는 흠칫했으나 다시 오른손을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려 놓고 꽉 움켜쥐었다.
여자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는 입술을 뒤틀며 웃고는 여자의 허벅지에서 손을 떼었다.
차가 한강 다리 위로 올라섰다.
이제 막 떨오르는 붉은 태양의 햇살이 강물 위에서 사금파리 조각 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여자의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싸늘했다.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의 반응은 그가 지금까지 손에 넣었던 여자들과 비슷한 것이었다.
"당신 하기에 달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