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숲 (12/12)
8. 후일담
따스한 봄날 결혼한 두 사람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왔다.
잠깐 낮잠을 잤던 우림의 눈이 먼저 떠졌다. 옆에 돌아누운 태오의 얼굴은 베개에 파묻혀 있었다.
이건 우림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었는데 태오는 넓은 어깨 때문에 옆으로 돌아눕는 걸 불편해했다.
베개를 두세 개 쌓아 높이를 맞추는 그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피식 웃는 소리에 눈을 뜬 태오가 우림을 끌어안았다.
그는 잠에서 덜 깬 채 우림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말라 있던 표피가 축축하게 젖어 우림의 아랫입술을 빨았다.
부드럽게 빨던 키스는 금세 격렬해졌다.
“보지 빨게 올라와.”
태오가 잠기운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거 부끄러워요…….”
우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가 몸을 끌어당기자 슬금슬금 그의 얼굴 위로 가랑이를 벌렸다.
“씁. 또 좆 물러 가지. 이제 엎드리면 안 돼. 머리 방향 내 쪽으로 돌려.”
찰싹. 그는 엉덩이를 약하게 때리며 말했다.
“으흣.”
69 자세를 취하려던 우림이 울먹거리며 태오의 머리 위에서 몸을 반대로 돌렸다.
태오는 허벅지를 한껏 벌린 채 돌아서는 우림을 빤히 구경했다.
수치심에 붉어진 우림은 태오와 눈이 마주쳤다.
태연한 안색의 그는 우림의 허벅지를 쥐어 뭉개며 비죽 웃었다.
벌렁거리는 구멍이 새빨간 속살을 꾸물거렸다.
그새 젖은 구멍이 태오의 콧대로 미끄러졌다.
우림도 구멍이 높은 콧대에 닿았음을 느끼고 주춤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태오는 그러지 못하도록 우림의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그는 질척한 구멍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뜨거운 입김이 닿자 구멍이 씰룩거리며 바르르 떨었다.
“보지에서 내 좆물 냄새 난다.”
“흑, 맡지 마, 아흐으…….”
“이러는 거 좋아하잖아. 푹 젖어서는 왜 아닌 척이야.”
태오는 우림을 가볍게 타박했다.
두툼한 엄지가 질구 양쪽 끝을 갈고리처럼 걸어 벌렸다.
가로로 길게 쭉 찢어진 구멍을 뜨거운 살덩이가 파고들었다.
혀끝을 세워 입구 근처를 쿡쿡 찌르는 침입자를 느낀 우림이 허벅지를 움찔 좁혔다.
“하흐으, 아응……!”
“힘 빼고 편하게 앉아. 날 의자라고 생각해.”
“안 돼, 으응…… 시러…….”
우림이 고개를 가로젓든 말든 그는 우림을 푹 주저앉게 했다. 축축하게 젖은 음부가 입술과 코를 막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피식 웃었다.
우림은 임신 15주 차였다. 눈을 위로 들면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와 달덩이 같은 양쪽 둔덕이 보였다.
태오의 숨구멍을 막는 행위에 저어하던 건 잠깐이었다. 음핵을 몇 번 빨아 주는 것만으로도 백기를 드는 쉬운 몸이었다.
“아흐, 흣, 으응…… 아앙!”
차지고 탱탱한 입술이 앵두 알 같은 살덩이를 물어서 비볐다.
클리토리스 안의 몽우리를 으스러트리는 압력에 우림의 눈가가 젖었다.
구멍이 벌렁대며 그의 얼굴에 보지 물을 갈겼다.
위아래로 들썩거리며 숨도 못 쉬게 구멍을 비비는 꼴이 가관이었다.
이가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태오가 입술을 크게 벌렸다.
구멍에 딥키스하고 음부를 베어 물었다.
입술 안쪽의 뜨거운 점막이 음핵과 질구에 동시에 닿았다.
극도로 예민한 살갗을 쓸어 올리고 쓸어내리며 꾹꾹 자극을 줬다.
보지가 줄줄 녹고 있었다. 칠칠치 못하게 자꾸 싸 대며 남편의 얼굴을 엉망으로 적셨다.
음핵이 타는 듯 홧홧했다. 너무 민감해져서 미칠 것 같았다.
우림은 허벅지를 들며 발가락을 비틀어 꺾었다. 발가락 다섯 개가 각자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힘이 부쩍 들어갔다.
“힘 빼고 앉으라니까.”
태오가 엉덩이를 움켜쥐며 아래로 풀썩 주저앉게 했다. 달아오른 살덩이가 입술에 빨려 들었다.
“흐, 아응……! 아흣, 앙! 아으읏!”
우림은 쾌락에 빠져 몸을 들썩거렸다.
축축한 빨판이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앵두 알처럼 작은 살덩이가 불에 덴 듯 화끈거리더니 온몸에 열꽃이 붙었다.
끔찍이 달콤한 쾌락을 못 이겨 도망치는 음부를 끈질기게 쫓은 추격자가 끝을 딴딴히 세운 혀를 클리토리스에 처박았다.
나락 같은 절정이었다.
“하으응! 우읏, 흐…… 앗! 아아앙!”
껍질을 깐 물복숭아처럼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다 물크러져 형태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묽은 구멍을 비집고 혀가 꽂혔다.
짧고 뚱뚱한 살덩이를 꽂은 구멍이 벌름거리며 개폐했다.
태오는 우림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위아래로 살살 흔들었다.
절정의 파도가 몸을 덮쳤다.
그의 얼굴 위에 앉은 몸이 벌벌 경련하며 감전된 물고기가 되어 퍼덕퍼덕 튀었다.
태오는 쓰러지려는 우림을 얼른 붙들어 옆으로 조심스럽게 눕혀 주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구멍이 쉬지 않고 떨렸다.
“하으, 넣을래…….”
우림이 울먹거리며 태오를 불렀다. 안이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좆을 안 넣으면 만족이 안 되는 몸 같았다.
태오는 우림의 뒤에서 키스를 퍼부으며 허벅지를 살짝 들었다.
뜨끈뜨끈한 자지가 골에 닿았다.
그는 말 좆처럼 기다란 성기를 반도 넣지 않고 느릿하게 추삽질했다.
끈끈한 점막을 가르며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게 달팽이처럼 느렸다.
“더 깊게, 흐, 빨리, 아흣! 넣어 주세요…….”
“애 놀라. 엄마 되려면 좀 참자. 응?”
태오가 우림을 달래며 끌어안았다.
굳은살이 단단한 손가락이 유두를 빙글빙글 돌려 주자 교성이 높아졌다.
융기한 꼭지를 지그시 누르는 엄지 지문이 닳을 것 같았다.
커다란 손아귀가 젖을 다 터트릴 기세로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하으읏, 좋아…… 아으!”
악력은 세고 피부는 여려서 금방 손자국이 남았다.
태오는 우림을 만질 때마다 정말 애쓰고 있었다.
다 터트릴 수 있을 것 같고 또 그러고 싶은데,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 몇 번이나 손을 쥐었다가 폈다.
“애는 하나만 낳자. 뻐근해 죽겠어…….”
씨발, 좆 터지겠다. 태오는 그 말을 참으며 우림의 어깨 위에 키스했다.
아래로 기어들어 간 손이 살이 통통하게 찬 조갯살을 헤집고 클리토리스를 밖으로 꺼냈다.
손가락으로 비벼 문지르자 우림의 안쪽이 마구 조여들었다.
미끌미끌하게 젖은 음핵을 거세게 문지르는 힘에 우림은 금방 절정을 느꼈다.
“아흣, 아으응, 아핫! 하읏!”
우람한 성기가 내벽에 짓눌렸다.
허리를 들썩거리려는 우림을 꽉 끌어안은 태오가 얕은 곳을 쳐 댔다.
간질간질한 질구를 뭉뚝하게 긁자 절정을 느끼며 자지러지던 우림의 허리가 꺾였다.
그 탓에 불기둥이 푹 들어갔다.
“흐, 아기…… 우리, 아흣, 아기, 으…….”
“쉬이, 괜찮아.”
태오는 우림을 달래며 성기를 뺐다. 음부에 깊게 파묻어 허리를 거세게 쳐 댔다.
울룩불룩한 좆기둥에 문질러진 음부가 금세 달아올랐다.
몇 번을 떠는 건지 세지 못할 만큼 몸이 경련했다.
바들바들 떠는 우림의 허벅지에 멀건 정액이 퍼졌다.
“흐아, 으…… 아응!”
“흣, 하아…….”
헐떡거리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겹쳤다. 태오는 우림의 입술을 집어삼키고 뜨거운 숨결을 미끄러트렸다.
우림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깻죽지에 맞닿은 태오의 것도 그랬다.
꽉 감싸 주는 따뜻한 체온이 놀랍도록 편안한 안정감을 주었다. 우림은 그의 품에 기대어 숨을 색색 쉬었다.
힘이 쭉 빠진 하얀 허벅지 사이로 색이 짙은 귀두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허연 정액을 질펀하게 싸지른 검붉은 성기는 거품 낀 크림을 바른 것 같았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우림은 그걸 보고 멍하니 속삭였다. 진심이었다. 정액에 젖은 자지를 보는데 입맛이 돌고 달콤새콤한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남의 좆 보고 실례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남편 좆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말이나 못하면.”
태오는 농담으로 취급했다가 우림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걸 보고 눈가를 좁혔다.
“진심이야?”
“네?”
우림의 눈망울은 순진무구했다. 태오는 속으로 혀를 차며 핸드폰을 찾았다.
검색해 보니 차로 20분쯤 걸리는 거리에 요거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있었다.
“금방 다녀올게. 1시간 안에 올 거야.”
몸을 일으킨 그는 휴지를 뜯어 대충 닦은 불룩한 성기를 바지 안으로 불편하게 욱여넣었다.
“나도 갈래요.”
우림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아직 배가 많이 나온 것도 아닌데 태오는 조급한 몸짓으로 다가가 몸을 일으키는 우림의 손을 잡아 줬다.
“씻겨 줘?”
“지금 먹고 싶은데…….”
우림이 얼굴을 붉히고 속삭였다. 다녀오는 시간도 못 기다리고 일어났는데 씻을 시간은 없었다.
태오는 제 것을 휴지로 대충 닦았지만 우림의 그곳은 수건에 물을 묻혀 와 꼼꼼히, 그러나 매우 빠른 손놀림으로 닦아 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둘만의 외딴섬 같았던 제주도 별장을 나섰다.
“요거트 플레인 맛 하나 주문받았습니다. 토핑은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주문하고 있던 태오가 우림을 흘긋 돌아봤다. 그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우림이 태오의 팔뚝을 쥐고 토핑 종류를 살펴보았다.
주문받느라 정신없었던 알바생은 태오의 뒤에서 우림이 튀어나오자 깜짝 놀랐다.
체격 차이가 커서 전혀 몰랐다. 알바생은 자기도 모르게 두 사람을 훔쳐봤다.
여자가 쓰고 있던 모자가 앞으로 쏠리며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차갑고 건조한 인상의 남자가 픽 웃으며 한 손으로 모자를 집어 다시 씌워 주었다.
새내기 알바생의 얼굴이 빨개졌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가 심장을 콩닥거리게 했다.
“꿀이랑…… 캔디포도요.”
천사? 생긋 웃는 우림을 본 알바생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는 황소처럼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게 드세요!”
알바생이 꾹꾹 눌러 담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정량을 가볍게 넘는 요거트 위에 콕콕 박혀 있던 캔디포도가 또르르 미끄러졌다.
태오는 눈썹을 들썩이며 잠시 알바생을 바라보다가 이내 관심을 끄고 돌아섰다. 그는 차가운 종이컵을 냅킨으로 감싸고 숟가락까지 꽂아 우림에게 주었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던 우림이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태오는 앞을 안 보고 걷는 우림을 챙겼다.
바로 앞에 해변이 있었다. 우림과 태오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따라 걸었다.
“한 입 먹을래요?”
우림은 하얀 아이스크림 위에 꿀과 캔디포도를 야무지게 얹어 태오에게 내밀었다. 그걸 본 태오가 고개를 숙였다.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내미는 우림의 손을 붙잡아 내리고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으응…….”
입가에 묻어 있던 끈적한 아이스크림이 붉은 혓바닥에 묻어났다. 그는 우림의 입술을 깨끗이 핥아 준 뒤 물러났다.
“맛있네. 쫄깃해.”
무덤덤한 말에 우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사, 사람들도 많은데…….”
“네가 먹어 보라며.”
우림은 억울함에 입술을 어물쩍거리다가 푹 익은 문어 같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꺄하하하! 이쪽이야, 루비!”
어린 여자아이가 깔깔 웃는 소리가 났다.
웬 진흙 뭉치에 줄을 채워 함께 공을 차며 달리던 소녀는 실수로 공을 세게 차 버렸다.
뻥! 떠오른 공이 젖은 모래알을 퉁겨 내며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태오는 띨빵하게 서 있는 우림을 옆으로 잡아당기고 바람이 빵빵한 축구공을 손으로 낚아채 붙잡았다.
그는 공을 발로 가볍게 굴려 돌려보냈다.
“헉! 죄송해요!”
공과 리드줄을 쥔 소녀가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본 소녀의 부모도 달려와 아이를 혼내고 사과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공 차면 안 된다고 했지!”
“잘못했어요…….”
“놀라셨죠? 죄송해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들 가족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 아이와 반려견을 챙겨 돌아갔다.
우림은 드디어 진흙 뭉치의 정체를 알았다.
분홍색 혓바닥을 헥헥 내민 그것은 작은 강아지였다.
게다가 본래 털 색은 흰색으로 보였다.
흙목욕이라도 했는지 엉망진창인 저들의 반려견을 발견한 부부의 얼굴이 시커메졌다.
“루비, 너 언제…….”
“목욕 확정이네.”
“그거야 여기 올 때부터 각오했지만 저 모래는 어쩜 좋아……. 씻겨 나가기는 하는 거지?”
“목욕은 자기 담당인 거 알지? 나는 말리기 담당이야.”
“빗질도 만만치 않을걸?”
“엄마! 아빠! 더러운 개가 행복한 개래요! 루비 엄청 신났어요!”
소녀의 말처럼 회색이 된 개는 무척 신이 나 있었다.
조그만 발로 폴짝폴짝 점프해 가며 가족들을 졸졸 쫓아가는 강아지의 분홍색 혓바닥이 부채처럼 팔랑거렸다.
“우리 아기는 여자애일까요, 남자애일까요?”
그렇게 말하며 우림은 태오의 대답을 예상해 보았다. ‘여자든 남자든 무슨 상관이야.’가 우림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태오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한다고 달라지지도 않을 아이의 성별이 그에게는 새로운 고민을 안겨 주는지, 무척 심각하게 다가왔다.
“딸, 아들…… 딸, 아니야. 아들로 하자.”
“그게 뭐예요.”
“복잡해. 딸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들이 차라리 나을 것 같고, 아들이라면 마음은 편할 것 같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내심 딸이기를 바라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는 횡설수설하다가 찬 바람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휭 불어온 바람에 우림이 쓰고 있던 밀짚모자가 뒤로 날아갔다. 그는 손을 길게 뻗어 모자를 붙잡고 모자와 연결된 하얀 레이스 천을 우림의 턱 밑에 묶었다.
고개를 숙인 그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리본 모양을 잡았다. 턱을 스치는 손가락이 간질간질했다.
‘잘생겼다…….’
우림은 태오의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미소를 본 태오의 얼굴이 화난 사람처럼 사납게 구겨졌다.
“넌 네가…… 짜증 나게 예쁘다는 걸 알아야 해.”
좆같이 예쁘다를 조금 순화한 말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말해 놓고 태오는 이게 아닌데 싶은 얼굴을 했으나 우림은 배시시 웃었다.
“여보도 잘생겼어요.”
태오의 턱이 불거졌다. 그는 말없이 등을 휙 돌렸다. 그의 손이 우림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부끄러워요?”
우림은 태오를 쪼르르 쫓아가며 재잘거렸다. 그가 묶어 놓은 리본 끈이 살랑거리며 그의 귓바퀴를 스쳤다.
아직 4월이라 바람이 찼다. 우림의 손이 차가워졌다는 걸 느낀 태오의 걸음이 빨라졌다가 우림의 속도에 맞추어 다시 느려졌다.
우림은 태오의 손길만큼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태오는 결코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태오는 언제나 우림의 구원이었다.
* * *
신혼여행을 다녀온 두 사람은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가까운 산부인과에 들렀다.
예약하고 온 우림은 바로 다음 차례였지만 진료가 끝나지 않아 5분 정도 대기해야 했다.
인기가 많은 곳이라 사람들이 붐볐다.
태오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를 양보했다.
“여기 앉으세요.”
산부인과에 온 남자는 대부분 애 아빠였다. 남자는 임산부로 보이는 여자의 옆에 섰고 우림은 고개를 숙이며 여자의 옆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저기, 몇 주나 되셨어요?”
산부인과에서 나눌 주제는 하나밖에 없었다. 붙임성 좋은 여자의 말에 우림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16주 됐어요.”
“우리 쭉쭉이는 20주 차 됐어요! 남편이랑 저랑 키가 작아서 쭉쭉 크라고 태명을 이렇게 지었거든요.”
“우리 애기는 찰떡이에요.”
우림이 두 뺨을 붉히며 수줍게 속삭였다. 태오와 우림이 함께 고민해 붙인 태명이었다.
임신 초기 때 몸이 살짝 안 좋았기 때문에, 부디 찰떡같이 잘 붙어 있다가 만나자는 뜻으로 지었다.
다행히 지금은 안정되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찰떡이는 왕자님이에요? 공주님이에요?”
“아직 몰라요.”
“여기 선생님들 은근히 깐깐해. 우리 쭉쭉이도 탯줄 때문에 애매하다고 안 알려 주셔서 제가 직접 알아봤잖아요.”
“직접요? 어떻게요?”
“12주 차 때는 각도로 알아본다고 해서 맘카페에 사진 올려서 물어봤어요.
그때 딸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셨는데 16주 때 영상으로 확인해 보니 진짜 딸이었어요.
다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아들이면 삼각점이 로켓처럼 보인대요.”
우림은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우림 산모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조용히 옆에 서 있던 태오가 손을 뻗어 일어서려는 우림을 부축했다.
우림은 옆에 있던 산모에게 눈인사를 한 뒤 진료실로 들어갔다. 피를 뽑아 검사하고 초음파를 확인했다.
“아기는…… 건강하네요. 잘 놀고 있는 거 보이시죠?”
우림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쪼끄만 게 나름 사람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손가락, 발가락도 꼬물거렸고 아기 심장이 콩닥거리는 게 다 보여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리둘레는 3.55cm, 몸무게는 179g이에요.”
“정상입니까?”
태오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 160g대인데 뚱뚱한 건 아니고 약간 포동포동해요. 정상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포동포동. 그 단어가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우림은 소시지 같은 아이의 팔과 다리를 상상해 보며 웃었다.
영상 속 아이의 모습이 돌아가며 다리 사이가 보였다.
태오의 눈에는 로켓을 뻥 발사하고 있는 아이의 삼각점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다.
“파란 옷 준비하시면 되겠어요.”
우림이 그 말을 이해하고 활짝 웃었다.
* * *
태오는 향긋한 내음을 따라 울창한 숲속을 걸었다.
신록의 잎사귀 사이로 탐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숲 전체가 복숭아밭이었다.
뜨거운 여름의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는 과실은 무엇 하나 향긋하지 않은 게 없었다. 모양도 예쁘고 과즙도 많은 물복숭아였다..
태오는 신중한 태도로 그 많은 복숭아를 지나쳤다.
그가 찾는 건 이곳에서 가장 크고 좋은 것이었다.
그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복숭아를 발견했다.
색이 짙고 크기도 실했다. 어찌나 잘 익었는지 그 복숭아에서 나는 지독한 단내가 코끝에 맺혀 찐득거릴 정도였다.
크르르릉!
집채만 한 호랑이가 그 나무 아래에서 복숭아를 지키고 있었다.
호랑이의 송곳니가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할 정도로 컸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호랑이는 사냥을 준비하는 맹수처럼 몸을 낮추고 이를 허옇게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
호랑이를 완벽히 무시한 태오는 기다란 장대를 들었다.
그가 높이 있는 복숭아를 따려고 하자 호랑이는 당황하여 두 눈을 크게 떴다.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서 데룩데룩 구르는 게 우스웠다.
크허엉, 크헝……!
태오가 막대를 내려놓지 않자 한껏 혼란스러워하던 호랑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자신을 두고 복숭아를 가져가려고 할 수 있냐는 듯했다.
생긴 건 그럴듯한데 하는 짓은 띨빵한 게 꼭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다.
뚝뚝 떨어진 눈물이 튀어 태오의 바지 자락을 미지근하게 적셨다.
태오는 자기도 모르게 막대를 내려놓고 울고 있는 호랑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호랑이의 이마를 매만지는 순간 꿈이 끝났다.
* * *
잠에서 깬 태오는 옆을 더듬대며 느슨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림이 보이지 않자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꺄아!”
욕실에서 들리는 비명에 태오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아기, 아기가……!”
욕조에 누워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우림의 얼굴에는 느낌표가 크게 떠올라 있었다.
따뜻한 물에 풀려 있던 몸이 또 한 번 움찔 튀었다.
“아, 빨리…….”
태오는 우림을 욕조 안에서 꺼내려 손을 넣었다.
우림은 안아 들려는 그의 손을 잡아 배를 만지게 했다.
“만져 봐요.”
콩! 콩! 호수에 뜬 달덩이 같은 배가 불룩거렸다. 태동을 느낀 태오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어떡해……. 너무 신기해요.”
엄마와 아빠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후 아기는 잠잠해졌다.
태오는 얕은 둔덕처럼 부푼 배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태몽을 꿨어.”
“언제요? 방금? 뭐 나왔어요?”
우림은 강한 흥미를 보이며 캐물었다.
“복숭아나무로 된 숲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나오는 꿈. 널 닮았던데.”
“호랑이가요?”
“응.”
우림은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보았다. 호랑이는 좀 아니지 않나? 그래도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가 나오려나 봐요.”
욕조 옆에 털썩 주저앉은 태오가 말없이 우림의 배를 쓰다듬었다.
동그란 배가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왜 이렇게 야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오래 있으면 안 좋아.”
태오는 물에서 우림을 건져 내고 수건으로 몸을 감쌌다.
부드러운 수건이 몸을 꼼꼼히 닦으며 젖은 가슴과 배, 다리 사이까지 간지럽게 지나쳤다.
닦아 주고 있을 뿐인데 젖꼭지가 빳빳하게 섰다.
우림은 어지럼증을 느낀 것처럼 살짝 비틀거렸다.
우림을 붙잡아 준 태오가 가운을 입혀 주고 안아 들어 침대에 앉혔다.
“철분제 먹었어?”
“먹었어요.”
“혼자 물에 들어가지 마. 위험해.”
“네…….”
태오는 딱딱한 어투로 잔소리를 쏟아 낸 후 우림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눌렀다.
지끈거리던 혈관이 그의 키스에 얌전히 수그러들었다.
빗과 드라이어를 가져온 그가 우림의 머리를 살살 말리고 빗질했다.
“딸이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머리는 나보다 태오 씨가 더 예쁘게 묶어 줬을 것 같아. 손재주가 좋으니까.”
“이걸로 충분해.”
태오가 우림의 머리카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머리를 만져 주는 손길이 기분 좋았다. 우림은 눈을 지그시 감고 속삭였다.
“왜 이렇게 졸린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피곤해.”
“애 키우는 게 보통 일이겠어?”
태오가 우림의 가운을 젖혔다. 동그랗게 솟은 배와 숱이 적은 음모가 보였다.
혼자만 홀랑 벗고 있는 게 부끄러워서 우림은 작게 꼼지락거렸다.
쭈욱. 배에 바르는 튼살 크림을 손바닥에 짠 그는 차가운 크림을 손바닥에 문질러 열을 내고 따뜻해진 크림을 우림의 배에 발랐다.
갓 구운 식빵에서나 날 것 같은 달콤한 버터 향이 확 올라왔다.
“으응…….”
우림은 뒤척거리며 팔로 몸을 지탱하여 누웠다.
볼록한 배와 젖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태오가 보였다.
임산부의 몸은 열이 금방 올랐다. 새하얀 피부가 연한 꽃잎의 색으로 변했다.
“하아, 우림아……. 왜 이렇게 너랑 잘 어울리는 걸 골랐어.”
태오는 타박과 탄식을 섞어 속삭이며 우림의 체향을 들이켰다. 보드라운 살냄새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둘째는 절대 안 돼. 네 배에 다른 걸 들이는 건 이번만이야. 이제 피임 잘하자, 응?”
“하지만…… 안에 싸는 게 좋단 말이에요…….”
우림은 작게 웅얼거리다가 불꽃처럼 새파랗게 빛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고 입술을 닫았다.
숨통을 물어뜯을 것 같은 매서운 눈빛과 다르게 우림의 배를 쓰다듬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그래. 처음부터 내가 묶을 걸 그랬네.”
“묶어요?”
“애 낳기 전에 내가 먼저 수술해야겠다.”
씨 없는 수박이 되겠다는 선언에 우림은 좀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하려고요? 생기면 하나둘 정도는 더 낳아도…….”
“난 질투도 추잡하게 한다고 했잖아. 애한테까지 질투하는 개새끼야, 내가.”
딱딱하게 끊어 말하는 얼굴이 심각했다.
우림은 배시시 웃으며 하나만 낳아 잘 길러 보자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임신 38주 차.
우림은 찰떡이와 만날 준비를 했다.
찰떡이가 거꾸로 누워 있어서 수술 시간이 조금 길어질 거라고 했지만 그것만 빼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갈 줄 알았다.
“으아아앙!”
아기가 우는 소리가 났다. 척추주사를 맞고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던 우림은 그 소리를 듣고 애가 태어난 걸 알았다.
“어머, 이렇게 예쁜 신생아는 처음 봐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했던 말까지는 기억났다.
그런데 숨 쉬는 게 너무 불편했다.
누워 있는데도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선생님! 산모 혈압 계속 떨어져요!”
다급하게 소리치는 말을 들으며 우림은 정신을 잃었다.
우림이 정신을 차린 건 그 뒤로 4시간이 지나고서였다.
눈을 떴을 때는 태오가 우림의 손을 붙잡고 앉아 있었다.
기도하듯 우림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있던 태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도깨비처럼 서슬 퍼런 눈동자는 짐승도 알아서 피할 만큼 흉포했다.
“다시는, 씨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해……. 맹세하는데, 또 이런 짓을 벌이면 내 좆을 잘라 버릴 거야.”
눈을 뜬 우림을 본 그가 숨을 거칠게 헐떡이며 협박했다.
태오는 이미 정관수술을 받았고, 앞으로 또 같은 일이 생길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며, 이건 잠깐의 사고라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왜 본인의 성기를 자르겠다는 결론을 도출한 건지 우림은 납득이 안 됐다.
그러나 태오가 당장이라도 제 목을 조를 듯 살벌하여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우림은 그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
태오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에게 붙잡혀 있던 손도 축축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다 아픈데, 너무 놀라서 몸의 고통도 잠시 잊었다.
붉은 눈시울을 본 우림은 아연하게 물었다.
“울었어요?”
벌써 15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는데 태오가 우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물은 흐르지 않았으나 눈꼬리 끝이 젖어 있어 그가 울었다는 건 확실했다.
“이렇게까지 끔찍한 경험은 처음이었어.”
그는 단언하며 숨을 고르고 일어나 너스 콜을 눌렀다.
그사이 태오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VIP 환자의 -진상 보호자를 둔- 상태를 살펴봤다.
우림은 시끌벅적한 소란이 가신 후 기대하던 아기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신생아의 얼굴이라 이목구비가 아주 또렷하지는 않았으나 우림이 기절한 사이 깨끗하게 씻은 아기는 혈색이 좋았다.
뺨은 반드르르했고 호빵처럼 빵빵한 뺨은 탱글탱글해 보였다.
“아기는 건강하다고 하죠?”
“우량아라던데.”
태오가 강보에 싸인 아기를 데려와 우림의 가슴 위에 올려 주었다.
그가 아기를 받쳐 주고 있어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예뻐요…….”
우림의 말에 태오는 처음으로 아기의 얼굴에 관심을 가졌다.
우림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태오가 여태껏 애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는 걸 우림은 몰랐다.
“널 많이 닮았어.”
“그러네요……? 첫째는 아빠 닮는다고 했는데?”
호랑이 태몽도 꿨고 첫째인데 왜 이렇게 나를 많이 닮았지? 우림은 의아해하며 아기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우주처럼 신비로운 눈동자로 제 부모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우리 외동아들이야.”
태오가 강조했다.
아기와의 만남은 짧았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는 다시 신생아실로 돌아가고, 태오는 우림의 침대를 조정해 그녀를 눕혀 주었다.
“진통제 더 필요하면 말해.”
“음……. 그냥 자는 게 좋겠어요.”
슬슬 마취가 풀리면서 밑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아직 괜찮을 때 얼른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우림은 눈을 감았다.
“나 어디 안 가요. 조금만 자고 일어날게요.”
태오는 어느 때보다 꼬질꼬질한 우림의 뺨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속삭였다.
“사랑해, 우림아.”
“나도 사랑해요……. 이제 우리 셋이 행복하게 살아요…….”
방긋 웃으며 우림은 잠에 빠졌다.
태오는 눈을 감은 우림의 얼굴을 조금 불안하게 바라보다가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안정을 되찾았다.
푸른 가을의 하늘이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며 맑게 빛나고 있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