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적 취향의 영향은 엄마였다.
어릴때부터 내 부모님은 주말부부셨다.
아빠는 항상 타지에 일을 가시고 주말에 겨우 오시는 일정이었고, 엄마는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주말부부가 너무 오래 지속 된 탓일까.
아니면 두분사이가 그렇게 썩 좋지 않았던 탓일까.
내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 엄마는 외출이 잦아졌다. 그것도 밤외출로.
그때는 엄마가 항상 나갈무렵 친구 잠깐 만나고 온다고 해서 그런가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친구가 그 친구가 아니었단걸 깨닫게 되었다.
항상 나갈때 아빠한테 전화오거나 하면 엄마 잔다고 해라라고 하면서, 밥은 밥솥에 얹혀놨으니까 반찬 냉장고에서 꺼내서 알아서 먹어라 라고 외박도 근근히 하셨었다.
물론 다음날 학교가야하니까 아침에 집전화로 모닝콜은 해주시더라.
어느 날 이었을까. 여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거실에 에어컨이 있지만 부모님 허락없이 트는게 어려웟기에 그냥 그대로 방문 열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더워서 창문도 열고 억지로 잘려는데 도저히 더위를 이길 수 없어서 방문 열고 나가는 순간 거실에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야! 야!. 들어가 빨리 들어가!" 라고 내게 손찌검을 하듯이 손사레를 치며 나를 내 방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게 당시 엄마는 포르노를 보고 있었다. 국산 이었던거 같은데 남자가 여자 몸속으로 본인 분신을 막 넣으려던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내 방으로 쫓겨나듯이 들어온 후 시간이 잠깐 흐른 후 너무 더워서 조심스레 방문 열고 나가니까 엄마도 당황했는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비디오를 꺼내시더라.
그리곤 안방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 두셨다.
훗날 엄마가 일을 나가시게 된 뒤로 집에 혼자 있게 되면 옷장을 뒤져봤는데 거기엔 내가 봤던 비디오 보다 더 노골적인 비디오 테이프가 몇개나 있더라. 물론 다 보았다.
따로 썰을 풀 수나 있을까 싶지만 가장 흥분됐던건 엄마 본인의 섹스테이프도 있었다.
그때 였을까. 엄마가 더이상 엄마로 보이지 않고 한명의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초저녁에 나가선 새벽늦게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예 외박을 하고 내가 학교갔다오면 엄마는 집에서 자고 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중학교때 슬슬 차오르는 성욕과 위의 비디오때문에 엄마의 몸에 흥미가 가고 상상속에서나마 엄마랑 섹스를 자주 꿈꿨던걸로 기억한다.
엄마를 훔쳐보고 싶어서 엄마가 나가시고 나면 자기전에 일부러 바깥쪽 베란다에 버티칼커튼을 다 치고 안방앞 보조등만 켜둔채 내 방문은 활짝 열고 머리를 방문쪽으로 해서 많이 잤다.
그러다 엄마가 새벽에 술취한채로 귀가하고 나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그 모습이 마치 거울로 반사되듯 거실 베란다 유리에 적나라하게 비춰졌다.
우리 엄마였지만 보지털이 상당히 많았다. 엉덩이도 30대 후반 아줌마치곤 희고 탱탱했었다. 이것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민둥산보단 울창한 보지를 더 좋아한다.
여자들 냉관리 때문이었겠지만 엄마는 훈증도 자주 했다. 확실히 외출이 잦아지고 난 후 훈증도 자주 하시는 듯 보였다.
훈증할때 몰래몰래 베란다를 통해 안방창문으로 훔쳐보고 싶었지만 위험부담이 커서 그렇게 하진 못했다.
다만 중간중간 내 동생한테 심부름 시킬때 일부러 내가 가서 모르는척 방문열고 쪼그려앉아 훈증하고 있는 엄마 보지털을 몇번 보긴 했다.
그렇게 외출이 잦던 어느날 밤늦게 엄마가 팬티스타킹을 신고 옷매무새를 잠깐 더듬고 나가실때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셨는지 우리들 앞에서 치마를 들추고 스타킹을 다시 정돈하셨는데 노팬티였다.
거뭇거뭇한 보지털이 내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보지털이 비치는 살색의 스타킹.
거기다 엄마는 페티큐어도 하신 상태였던지라 그 모습이 중학생한테는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섹시하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마 당시 만나던 불륜남이랑 섹스를 하러 나간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왜냐면 새벽에 들어오셨을땐 신고 나갔던 스타킹없이 들어오셨었다. 들어오신 후 위처럼 세팅해놓은 베란다 유리로 보인 장면은 화장실에서 손으로 본인 보지를 만지시면서 뭔갈 닦아 내고 계셨는데 때마침 불륜남으로부터 집으로 전화가 오니까 행여나 우리가 깰까봐 아랫도리는 그대로 들어낸채로 거실로 전화받으로 나오셨다.
나 역시 베란다로 훔쳐보다가 엄마가 나오는통에 자다가 몸 뒤적거리는 척 하긴 했다.
조용조용히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통화하시는데도 계속 본인 보지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시는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풀발기가 된다.
가끔은 엄마랑 나랑 둘이 있을때 엄마가 자꾸 " 우리 아들 꼬치 한번 보자" "우리아들 꼬치 한번 만져보자, 얼마나 컸는지 엄마는 알아야겠다"고 말하면서 내 꼬추를 만질려고 했었는데 어렸던 나는 그걸 엄청 싫어하면서 되려 엄마한테 화냈던 기억이 있다. 만약 그때 엄마의 요구에 내가 응했다면 엄마랑 좀 더 이르게 경험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결국 엄마는 본인부주의로 인한 우리들 때문에 바람피던걸 아빠한테 들켜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고 그렇게 아빠는 후에 의처증으로 인해 엄마를 계속 의심했고 엄마는 저런 과거를 우리가 잘 알지 모를거라 생각했는지 역으로 아빠한테 정신병 운운하며 정작 본인이 바람피우니까 나를 의심한다고 의부증 대립하셨다. 그렇게 내가 고등학교때 두 분은 이혼을 하셨고 엄마는 따로 나가 사셨는데 아빠가 술취해서 어느날 빙 둘려서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떄 엄마가 바람을 피운게 맞았구나 라고 확신을 했다.
어릴적 저런 기억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저 때의 엄마처럼 보지털이 많고 페티큐어가 칠해진 여자발페티쉬 성향을 가졌으며, 검스보단 살스를 선호한다.
거기다가 MILF 장르의 야동이 제일 꼴리더라.
오래전 이야기 인지라 기억에 왜곡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조금의 MSG가 첨가 되었을 수 도 있어요.
남들이 보기엔 꼴리지 않을것 같아도 나에겐 기억속의 저 장면들이 매우 꼴릿하게 남아있고 지금도 동생은 모르는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라 끄적여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