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물야설) 그의 대학생활 21
철하는 한동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눈물이 많았던 자신이었다.
슬픈영화만 봐도 눈물이 나는 감성적인 성격이었으니….
몇 달 동안 정도 많이 들고, 좋아하는 마음도 싹트기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 못 본다고 생각하니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다.
철하는 다시 편지를 들어 바라보았다.
[…예쁜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말아라. 울리는 없겠지만. 히히^^…]
‘쳇…. 울지 말라는데 울지 말아야지….’
철하는 그 자리에 벌러덩 누우며 다시 잠을 청했다.
결국 그날, 철하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
'짜라라라라라라라'
철하는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시험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바라보자 -이슬이♡-라고 찍혀있었다.
이슬이가 자기 멋대로 저장해 놓은 이름이었다.
“응. 안녕?”
[안녕이라니! 너 왜 오늘 학교 안 나왔어? 오늘 시험 마지막날인거 몰랐어?]
이슬이는 화가 났는지 꽤 격앙된 목소리였다.
“미안…. 몸이 조금 아파서 못 나갔다.”
[뭐? 학교 못 나올 정도면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픈거 아냐? 괜찮아? 너네 집에 갈까?]
“이제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흥…. 그래 알았다. 아 우리 여름방학 때 바닷가 놀러가기로 했으니까. 너도 알아서 돈 모으고, 시간 비워놔.
날짜는 나중에 알려줄게. 방학 때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자.]
“응. 알았다. 방학 잘 보내고 있어.”
[그래. 너도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
전화를 끊고 난 뒤 철하는 다시 자리에 벌러덩 누웠다.
왠지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움직이기 귀찮았다.
철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이슬이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바닷가라…. 친구들이랑 가면 재밌겠네. 음…. 그럼 돈이 필요할텐데…. 아르바이트…. 아!’
철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있는 민아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마지막 부분에 분명히 점장님께 추천해준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으로 갈 준비를 하였다.
내일부터라도 당장 일을 할 생각이었다.
*
대충 준비를 마친 철하는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편의점을 바라보니 처음 서울에 올라와 민아를 만난 날부터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철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빨리 적응해야지. 언제까지 슬퍼할 순 없잖아….’
마음을 가다듬은 철하는 편의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평소에 민아가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서 있던 자리에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철하는 아마 저 사람이 점장일거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저씨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오세요.”
철하는 슬그머니 카운터로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철하의 인사에 아저씨가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철하는 민아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자 아저씨는 굉장히 반가운 표정을 하였다.
철하는 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아는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하고 성격도 밝은데다
얼굴까지 이뻐서 손님들도 모두 좋아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알바시간을 특정시간대가 아닌 한 파트 간격으로 쉬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또한 민아가 자신을 아주 착하고 성실한 애라고 적극 추천해줬으니 내일 등본만 띄어오면 바로 일을 시작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점장은 철하에게 오전타임, 오후타임, 야간타임의 셋 중, 하고 싶은 타임을 고르라고 했다.
철하는 여름방학에도 일찍 일어나기는 싫었기에 오후타임을 한다고 하였다.
오후타임은 15시부터 23시까지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날이었다.
점장은 한동안 민아의 얘기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문득 철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해봤니?”
“아니요….”
“흐음…. 그래 그러면 이틀정도 나와 함께 일하면서 일을 배우도록 하자.”
철하의 여름방학은 그렇게 생애 첫 아르바이트와 함께 시작하였다.
*
다음 날부터 철하는 편의점에 나가 점장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편의점 알바인 만큼 어려운 일은 없었다.
다만 시급이 최저시급보다도 적은 편이었다.
그래도 철하는 일을 배우며 마냥 즐거웠다.
처음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 설레기도 했고, 한여름에 펑펑 쐬는 에어컨도 시원했다.
게다가 이곳저곳에 민아와의 추억이 묻어 있어서 더욱 좋았다.
점장은 철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성년자에게 술, 담배를 팔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저번에도 어떤 알바생이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았다가 걸려서 그 알바생이 고스란히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어리다고 의심이 되기만 하면 무조건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라고 했다.
특히, 고등학생의 방학시즌이 되면 옷차림과 염색으로 분간하기가 힘드니 더욱 주의하라고 강조하였다.
*
금요일…. 이틀 동안 일을 배우고 적응하자 어느새 주말이 다가왔다.
점장은 철하에게 주말동안 배운 것들을 잊어먹지 말고 월요일날 나오라고 했다.
월요일부터는 철하 혼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편의점에서 나오자 초여름밤의 시원함이 철하를 맞이했다.
철하는 자취방으로 걸어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고 재미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편의점에서 일하다보면 왠지 신나는 일도 많을 것 같았다.
대문을 지나 자신의 자취방으로 들어가려던 철하는 주위가 평소와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의 옆방에 누군가 새로 들어온 것 같았다.
자신이 방을 얻을 때부터 굳게 닫혀있던 창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누가 새로 들어왔지…?’
자신의 옆방인데다 방으로 가려면 반드시 앞을 지나가게 되는 곳이기에 철하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궁금해졌다.
슬쩍 다가가 방충망에 얼굴을 바짝 갖다 붙이며 들여다보자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대충 보니 여자의 옷가지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을 바라보니 여자팬티도 보였다.
‘여자가 이사 왔나….’
한참을 살펴보던 중, 철하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예요?”
철하는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엔 한 여자가 네모 낳고 검은색의 작은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철하가 너무 놀라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서있자 그 여자는 다시 물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거냐구요.”
약간 날카로운 느낌이 드는 하이톤의 목소리였다.
철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예…. 아…. 저는 옆방 사는 사람인데요…. 아…. 그냥…. 누가 새로 들어왔나 궁금해서…. 아…. 죄송합니다.”
심문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철하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대학생활을 하며 여자 앞에 서면 벌벌 떨던 자신의 성격이 거의 고쳐지긴 했지만,
훔쳐보던 상황을 들키자 옛날의 버릇이 더욱 심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옆방에 산다는 말에 여자는 그제서야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