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2장. 폭풍의 밤 1
밤이 깊었다. 날씨가 음산한 탓인지 둑 너머 주택가엔 이미 불빛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보옥은 크리스털 유리잔에 스코틀랜드산 위스키를 반쯤 따라서 창밖 벌판을 우두커니 내다보았다.
바람이 점점 사나워지고 있었다.
칠흑처럼 캄캄한 벌판에서 바람이 목을 매듯 미쳐 날뛰었고 천변의 미루나무가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다시 책을 펴들었다.
엑소시스트(악마 추방자)였다.
그녀는 책의 서두에 씌어 있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 것은 죽을 때 다시 가져가리라`하는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책은 카톨릭 신부가 아프리카의 유물을 발굴하다가 공포를 느끼는 장면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들꽃이 완만히 피어있는 언덕, 오래된 도시의 변두리를 배회하는 들개의 아련한 울음소리, 파주주(악령. 공기의 마왕)의 저주, 카키복 사내, 뒷덜미를 엄습하는 공포. 그런 것들이 정교한 문장으로 묘사되어 그녀 자신이 악령이 날아다니고 있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녀는 책을 덮어 버렸다.
딸을 기다리기 위해 남편의 서재에서 갖고 나온 책이 하필이면 악마 이야기를 다른 소설이었다.
바람이 음산하게 부는 이런 밤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다.
(이 애가 밤을 새우려고 그러나?)
그녀는 외동딸 윤미가 걱정되었다. 윤미는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 나이의 어린 소녀들답게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아이였다.
그녀가 임신 중독이라는 병에 걸려 태어나기도 전에 미숙아였다.
그리하여 2킬로그램이 채 못 되는 신생아를 인큐베이터에 넣고 키웠다.
아이는 그 안에서도 사경을 헤매었고 그녀는 그녀대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야 했다.
그러나 차츰차츰 회복되어 아이도 그녀도 입원 3개월 만에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벌써 14년 전의 일이었다.
아이는 잘 자랐다.
잔병치레를 자주 했으나 그래도 태어날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자라면서 얼굴도 예뻐지고 공부도 잘했다.
늘 학년 석차가 1, 2등을 다투었고 지난달에 처음으로 5등으로 떨어지자 독서실에 가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대개 남편이 윤미를 마중을 나가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술에 곯아떨어져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녀는 술잔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서 한 모금을 삼켰다. 독한 술이었다.
그녀는 금세 목젖이 뜨끔하면서 뱃속이 찌르르했다.
(할 수 없지...)
그녀는 바람이 아우성치는 벌판을 내다보면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혼자서라도 윤미를 데리러 나가야 했다.
이런 날 윤미를 독서실에 보낸 것이 후회되었다.
그녀는 술잔에 남은 위스키를 입 속에 털어 넣듯이 마시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비는 오지 않고 있었으나 레인코트를 걸쳐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속이 쓰린 모양이었다.
벌써 화장실에서 두 번이나 토해내고 상비약으로 준비해 둔 술 깨는 약까지 먹였으므로 조금만 지나면 진정이 될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수척한 얼굴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남편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남편의 입에서 아직도 술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냄새가 고약했다.
그러나 남편이 무의식중에 허리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녀는 포개지듯 남편의 가슴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무엇인지 자기 아랫배를 찌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애개!)
그녀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왔다.
취중인데도 남편의 자주색 팬티 앞부분이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그녀는 웃음을 깨물며 남편의 팬티 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남편이 짧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녀는 짜릿한 흥분이 물결처럼 출렁거리며 전신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남편의 팬티를 엉덩이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재빨리 자기 팬티도 벗어 던졌다.
딸 윤미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스커트를 허리 위로 걷어 올리고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새삼스럽게 가슴이 설레었다.
그녀는 남편의 아랫배에 엉덩이를 지그시 눌렀다.
(아!)
그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덧 창문이 덜컹대는 소리가 더욱 요란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입이 열리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울음소리 같은 비명이었다.
그녀는 바다를 생각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였다.
그녀는 난파선이 되어 파도를 타고 흔들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깨우지 그랬어?"
그녀가 남편의 얼굴 옆에 머리를 쑤셔 박고 가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남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언제 깼어요?"
그녀는 남편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남편의 입에서는 아직도 술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조금 전에..."
"미안해요."
"괜찮아. 생각 있으면 깨우라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으면서."
그녀는 남편의 몸 위에서 떨어져 일어났다.
오래오래 남편을 자기 몸 속에 넣어 두고 싶었으나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윤미 데리고 와서 그냥 둘 줄 알아요?"
"윤미 아직 안 돌아왔어?"
시간은 벌써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웬일이지?"
남편이 비로소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같이 갈까?"
"그렇게 취해서 어디를 가요. 누워 있기나 해요."
"내가 그렇게 취했었어?"
"집에도 기어들어 왔으면서..."
그녀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내가?"
"갔다 와서 꿀물 타 드릴게. 자지 말고 기다려요."